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난의 행군 (문단 편집) == 기타 == * 위에서 고난의 행군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대강 서술하긴 했지만, 사실 '왜 하필 1995년이었는가?' 하는 질문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은 없다. 일단 파멸적인 식량난은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조짐이 보였고 1993년부터 지방에 아사자가 보고되었지만, 국내에 알려진 게 1995년이긴 했다. 즉 이미 아사자가 속출하던 북한은 국제 사회에 1994년부터 식량지원을 구걸하고 다녔다. 그것도 원수 취급한 [[영국]], [[미국]]과 [[유엔]]에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어차피 북한이라는 나라는 건국 이래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아본 적은 없었고 특히 고난의 행군의 핵심으로 알려진 식량난 역시 1980년대부터 지속되어 왔는데, 어쩌다가 약 10년 이상을 버텨오다가 이 시기에 [[동구권]]과 [[소련]]에 그간 무상지원과 소련과 동구권에 조잡한 경공업 수출로 물물교환으로 얻어내던 석유나 기계류 수입이 동구권 공산정권과 소련 해체하며 달러 없이는 결제가 불가능해졌고 이를 대책없이 방치하다가 국가 체제 자체가 동반 붕괴하는 현상이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북한 체제에 대한 조사와 평양을 제외한 북한 지역 주민들의 90년대 당시 삶을 연구해야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의문에 대해 제기되는 설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현상은 기존의 대기근들과는 차별화되는 사태인 고로 김일성의 사망과 이로 인한 국가 행정의 일시적 마비, [[도덕적 해이]] 등의 사회적 요소가 결합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기는 하다. 한편 공산주의식 혁명 의식 실종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전쟁 이후 20년 간 없는 살림으로 경제를 일으켰는데, 갈 사람은 다 가고, 2대는 혁명 정신은 없고, 그렇다고 일하자는 동인도 없고... 그러니 자꾸 정체되었다가 김일성 사후에 뻥 터졌다는 것. * 위의 1995년에 갑자기 발생했냐는 이유와는 별개로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것에 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요인은 바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던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이 경제력이 약한 북한 등의 국가에게 물물교역 형식으로 원조를 해주고 있었는데, 북한이 수출한 제품은 품질이 너무 낮아 쓸 수도 없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꾸준히 북한 제품을 사주고 북한에 물품을 공급해주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이런 구상무역 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자 경제력이 떨어진 북한으로써는 해외의 식량을 제값에 수입할 돈이 없었다. 미국의 농업 회사 [[카길]]과 밀을 받고 아연을 넘겨주는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19970408/7245875/1|거래]]를 시작했으나, 북측이 광석을 제때 준비하지 않자 카길도 밀을 실은 배를 멈추고 거래를 끊었다.[[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1997060470057|#]] * 1987년부터 계속 방영한 북한의 장수 [[만화영화]]였던 <[[령리한 너구리]]> 또한 고난의 행군을 피해가지 못하고 1995년부터 3년간 공백기를 뒀고, 100부작을 목표로 했던 <[[소년장수]]>도 1997년 이후 공백기를 뒀다. 결국 돈이 급하니 해외 하청으로 돌린 것이다. * 일부 북한학자들은 저런 기근을 겪고도 북한이라는 국가가 붕괴하지 않은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자체의 문제 때문에 붕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붕괴란, 수령제 붕괴를 의미한다. 동유럽식으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북한의 핵개발]]이 표면화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북 제재를 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고 중국 역시 북한의 완전한 붕괴는 바라지 않았으므로 암암리에 북한을 돕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류가 내륙을 포함한 지방 중견도시에 퍼진 때가 2000년대 중후반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한류 유포 초기에는 한류가 '남조선'을 의미함을 모르거나, 북한이 이것을 곧 이룰 수 있다는 시각도 많았다고 한다.]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사는 줄 알았다는 등, 현대 정세를 조선시대~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비슷하게 여기는 식의 세뇌를 원인으로 드는 시각도 있다. 탈북민 출신인 [[주성하]] 기자는 만일 북한이 제 2차 고난의 행군으로 들어간다면 견뎌내지 못 한다고 밝혔다. [[https://nambukstory.donga.com/Board?bid=125!lid=319666&m=view|2차 '고난의 행군'은 로드맵에 없었다.]] * 2017년 영화 [[강철비]]에서도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고난의 행군에 대해 언급된다. 작중 메인 악역인 리태한 정찰총국장([[김갑수]] 분)이 쿠데타를 일으켜 평양을 접수한 뒤 북한의 핵무기 발사 암호를 알아내려고 "300만 명이 굶어죽어가면서도 기어이 핵 로켓트를 만들어 냈는데 너희들이 암호를 풀지 못 하면 우리나라에는 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며 북한의 해커병들을 닦달한다. * 2018년 영화 [[공작(영화)|공작]]에서는 시체가 거리에 무더기로 쌓인 장면이 나오는 등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이 때 북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많이 잡아먹어서 지금도 북한의 도시 길거리에는 [[길고양이]]가 거의 없으며, 탈북자들은 한국에 와서 길고양이가 많은 것에 놀란다고 한다. 물론 먹을 것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먹은 것이며, 북한에서도 [[고양이고기]]가 일반적인 음식은 아니다. * 북한 관련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탈북민이 고난의 행군때 북한에서 본 광경 중 하나로 언급한게 있는데 한 아이가 "[[패드립|나는 우리 엄마 죽어서 떡먹는다]]"라며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 고난의 행군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 다른 탈북민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이탄#s-1|이탄]]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은 경험을 언급했는데. 이탄과 옥수수가루를 섞어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소화가 되질 않으니 배는 안 고프지만 배출이 되질 않아서 항문이 막혀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건 김정일이 이탄 음식을 더욱 장려했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9POCzMLY89o|#]] 심지어 [[일제강점기|식민지]]를 경험한 어르신들조차 고난의 행군보다도 식민지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 시절에도 일단 돈이 있으면 밥을 사먹을 수는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제국이 미국한데 덤빈답시고 [[진주만 공습|기습]]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을 터뜨린 탓에 물자가 부족해져 배급으로 바뀌었던 것.] 젊은 세대조차 글과 그림으로 배우기만 했음에도 끔찍했다[* 물론 이는 젊은 시대가 그 시절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제 시대에 당시 행해지던 차별과 나라를 빼앗긴 설움은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 식민지를 몸으로 경험했던 어른들이 그렇게 말을 하며 화를 냈다는 것.[* 실제로 고난의 행군과 일제 식민지 시절을 비교할 때 나오는 소리가 자신들은 좁쌀밥이나 먹는데 일제 녀석들은 쌀밥 먹는 게 못마땅해서 일제를 욕했다라는 건 거의 고정 레퍼토리 수준으로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